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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팔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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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홍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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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5 11:32:29 , 조회 :
3,168 , 추천 :
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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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 근래 인사부침이 많았던 편입니다. 근래 인사이동 내역을 정리해보면, 신설 본당에 초대 주임으로 발령받아 6년 반을 머물면서 초기에는 본당기반 다진다고 신자들 들볶고, 이후에는 무모하고 무책임하게도 성전 짓는답시고 신자들 못살게 굴다 엄청난 빚만 남겨놓고 항구도시 목포의 한 본당으로 옮겨 갔습니다.
사실 그 본당은 사제생활 첫 해 보좌신부로 1년을 머물렀던 곳이었는데, 10년 만에 주임으로 다시 가게 된 것이었죠. 인심 잃고 욕 실컷 먹은 상처투성이에다 후임 신부에게 무거운 빚 보따리까지 넘겨주고 온 처지였기에 사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은 신자들의 너그러움에 의지하며 자숙의 시간을 보내다가 2년째 접어들면서 정신 차리고 부지런해지려는 때, 느닷없이 교구청으로 불려 들어가 사목국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1년 반 만에 옮긴 것입니다.
4년 만에 교구청을 나서면서 날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땅끝으로 잘 알려진 해남 본당신부로 갔건만 그 곳에서도 2년 만에 나주 본당신부로 발령을 받았는데, 5년 간 머물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지구의 대표 본당이었기에)와는 달리 1년을 가까스로 채우려는 시점에서 다시 교구청으로 불려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직책만 다를 뿐 3년 만에 교구청으로 복귀(?)한 처지가 된 것이지요.
2년 전 한 방송국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내가 여자인 게 싫었던 순간”에 대한 설문조사 내용을 볼 수 있었지요.
그 조사에 의하면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시집만 잘 가면 만사 O.K”가 1위, “여자는 예쁘고 날씬하고 봐야지. 과거는 용서해도 못생기거나 뚱뚱한 건 용서 못한다”가 2위, “그래도 아들은 있어야지!”가 3위였습니다. 남성 중심, 남성 위주로 움직여온 우리사회의 안타까운 일면이 드러난 결과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 조사를 보면서 얄궂게도 제 처지가 연상 되었습니다.
여자 팔자 신부가 논할 일이 아니니 놔두고, 신부인 내 팔자가 뒤웅박 팔자 아닌가? 순명은 신부가 따라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이고, 이미 서품식에서 서약했고 매년 성유축성미사 때마다 존경과 더불어 서약하고 있으니, 인사 명령은 뒤웅박 팔자를 확인하는 절차 일 수밖에. 이삿짐을 풀었다 싶으면 다시 싸야 했던 처지를 되돌아보며 자연스럽게 연상된 결과이지요.
솔직히 교구청으로 복귀한 후 한동안 이런 생각으로 씁쓸했습니다. 그런데 뒤웅박 팔자소리를 푸념삼아 되풀이하면 할수록 생뚱맞게도 뒤웅박 팔자가 실은 모든 신앙인의 팔자가 아닌가하는 생각, 오히려 신앙인의 팔자는 뒤웅박 팔자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더군요.
신앙생활이 인간의 뜻과 계획과 욕심대로 하느님을 움직이려고 하거나 하느님의 힘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役事)가 우리 삶 안에 들어오실 수 있도록 틈새를 만들고, 하느님의 손길과 섭리에 우리를 내어 맡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신앙인이야말로 하느님의 뒤웅박이 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어쨌든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는 불평등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표현한 말이기에 시급히 정화되어야 하겠으나, “신앙인 팔자, 뒤웅박 팔자”, “신부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표현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내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조(自嘲)의 표현이 아니라 서품으로 축성되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제직에 보다 성실하게 응답하고자 하는 기쁨과 비움의 영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김계홍 신부 / 광주교구 70주년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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