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보이는창’(이하 ‘삶창’)에 와도 삶은 잘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찾아온다. 여느 술집과 다르게 ‘삶창’은 좀 조용한 분위기이고 중년층이 주 고객이며 여성들도 제법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중년 여성들과 수다를 떨곤 한다. 또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도 있는데 나의 여성친화적인 말씨나 행동에 남자들은 좀 불편해 하곤 한다. 이미 나는 사람들 사이에 ‘아줌마과’로 분류 된 지도 오래다.
얼마 전, 결혼 생활을 거의 30년 가까이해 온 부부가 ‘삶창’을 찾았다. 그들은 아들과의 관계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남편은 불과 몇 년 전 명예퇴직을 하고 지금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다시 일을 하고 있다. 아직도 연금을 타려면 몇 년을 더 일을 해야 한다. 생활에 대단한 압박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과거와 비교해서 부족함을 느낀다. 그 몫은 부인의 몫이 되었다. 그도 몇 년 전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자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함께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가사 일은 여자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사회는 여성으로 살기 힘든 문화이다. 아마도 이쯤 되면 가사 일은 대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순리일 것이다. 다행히 남편도 부인의 그런 모습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아들과의 갈등이다.
아들에게 특별히 인격적 결함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빠는 아들에게 더 이상 자신의 권력이 설득력이 없어서 서운한 마음에 분노하고 있다. 아들은 사사건건 간섭하고 가르치는 아빠의 모습에 기분이 상하였단다.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아빠는 여전히 과거 그 아들이 어릴 때의 그런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아들은 결혼을 할 나이가 이미 지났을 정도로 성장했다. 아빠와 아들 사이의 권력관계는 이제 일방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아빠는 이제 변화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그런데 아빠의 세월에 적응하는 속도가 늦은 것이 문제이다. 아빠와 아들의 갈등관계를 옆에서 지켜보는 부인은 남편의 그 적응 속도가 늘 답답하기만 하다. 남편은 이미 갱년기를 지나 과거의 모습이 아닌 매사에 자신이 없고, 점점 더 의존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골몰하며 그리고 쉽게 서운함을 느끼고 삐져 말도 하지 않고 집안에 엄청난 긴장을 조성하곤 한다. 다들 그렇게 변한 모습을 알고 있는데 본인만 그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 분리된 모습이다.
가부장적인 한국 문화에서 남자들은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남자로 살아가기란 생각보다 힘들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고정된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하니 말이다. 나는 그에게 ‘삶창’ 책꽂이의 “남자의 탄생”(전인권 저)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 드렸다. 그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 책을 올해 말쯤이나 읽어 보겠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딱딱해서 하느님조차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았다. 좀 안타까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