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부터 나는 좀 도발적인 생각을 했다. 어떤 사도직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술집이요”라고 대답했다. 이는 다분히 감정적인 표현이다.
교회의 사회사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그런데 밑 빠진 독에 물을 열심히 붓고 있는데 왜 물이 안 차냐고 묻는다. 할 말이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제 그런 독은 필요 없으니 더 이상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한다. 독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밑 빠진 독에 마치 물이 찬 것처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가 바뀌지 않는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노동사목과 같은 사회사목에서는 그 열매나 결과가 쉽게 도출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열매와 결과가 보이질 않는다. 교회의 높은 분들께 좋은 열매와 결과를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대상화 할 수밖에 없다. 노동사목이란 노동자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사목의 대상화가 된다면 그들의 요구에 귀기울이는 사목이 아니라 교회가 요구하는 것을 그들에게 들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언젠가 함께 일하던 신부님의 사목활동 안에서 노동자를 대상화 시킨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나 역시 사목의 결과에 대한 도출을 강요받았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란 생각을 자주했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사목이 나를 위한 그리고 교회를 위한 사목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분노했다. 그러고 내뱉은 말이 “노동자들이 모일 술집이요”다.
내가 노동사목을 하면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분노와 희망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엉터리 같은 나라에서,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지 않은 나라에서, 그리고 노동이 천시되는 나라에서 나는 그들의 분노와 희망에 귀 기울이며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과 함께 삶을 사는 동반자이다. 나는 이 동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오랜 시간 술집이란 공간을 사도직 공간으로 바꾸는 꿈을 꾸었고 상상했다. 비로소 2004년 7월에 문화공간을 겸하는 술집, ‘삶이보이는창’을 열게 되었다.
어떤 날은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찾아와 술을 한 잔 마시며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다가 나에게 술을 한 잔 권한다. 난 이런 술을 얻어 마신다. 그것도 원샷으로. 가끔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오기도 한다. 어린아이를 위한 곶감용 놀이기구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불교의 스님들과 개신교회의 목회자들도 가끔 들fms다. 이들과 나누는 대화도 재미있다. 서로를 이해해 가는 종교 간의 대화도 이루어진다. 주말은 노는 분위기이다. 라이브 콘서트와 춤이 이어진다.
이렇듯 나는 ‘삶이보이는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제직을 즐기고 있다. 손님을 대할 때는 당연히 친절하고 겸손해야 한다. 이는 나에게 사제의 중요한 덕목을 닦게 해 준다. 왜냐하면 손님이 끊기면 내가 서 있을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